토요타

2024. 1. 11. 12:16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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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다 사키치가 창업한 토요다 자동방직기제작소가 모태로, 현재의 자동차생산 사업부는 1933년 9월 1일에 신설되었다. 이후 1937년 별도법인화. 초대 사장은 토요다 리자부로(豊田利三郎). 현 최고경영자는 창업주의 후손인 토요다 아키오(豊田章男).

한편 사명은 설립자의 성씨인 豊田을 딴 회사 이름이기는 한데, 이 사람의 이름은 토요가 아니라 토요이다. 그런데 왜 회사 이름이 '토요타'냐 하면 그쪽이 어감이 더 좋아서라고. 일본에서는 토요다 사키치가 서양인들이 발음하는 걸 보고 서양인들에겐 'TOYODA'보다 'TOYOTA'가 더 발음하기 쉬워서 바꿨다는 게 정설이다. 1936년부터 상호를 '토요타(トヨタ)로 변경하였다. 공식적으로 한자가 아니라 가타카나로 쓰는데 이름 획수가 합쳐서 8획이면 운이 좋아서 이렇게 했단 얘기도 있다.

1930년대 창립한 후 쉐보레포드크라이슬러 등의 외제차를 구입 및 분해해 분석하고 먼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일본인 개척자들을 영입했다. 당시 일본에서 수요가 적은 자동차용 강철을 만들어주겠다는 제강소도 없었기에 제강소도 직접 만드는 노력 끝에 1935년 자체 부품이 들어간 A1형 시제 승용차와 G1형 상용 트럭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패전 후 1949년 일본 전체가 닷지라인불황에 빠졌을 무렵, 토요타자동차는 경영위기를 겪는다. 토요타자동차는 당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은행, 거래업체 등에 채무상환유예, 대금지불유예를 요청했지만 딱 두 회사로부터 거절당한다. 스미토모은행은 토요타의 채무상환유예를 거절하면서 칼같이 채무를 회수해갔고, 카와사키제철은 대금지불유예를 거절한다. 이때의 충격으로 창업자 토요다 키이치로가 급사했고, 정말 말 그대로 토요타는 망할 뻔했다.

이후 토요타는 그때의 원한을 기억하며 모든 거래에서 스미토모은행과 카와사키제철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일단 스미토모은행에는 절대로 대출하거나 예금을 맡기지 않았다. 그리고 스미토모은행이 1965년 자신의 거래업체인 프린스자동차가 경영위기를 겪자 토요타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당시 토요타가 딱 잘라 거절했다.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철강을 살 때도 카와사키제철의 것은 절대로 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두 회사와의 거래는 1949년의 경영위기로부터 50년 이상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재개되었는데, 이는 모두 토요타와의 거래관계에 있던 은행, 회사와 경영통합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거래가 재개된 것이다. 스미토모은행과는 미쓰이 계열의 사쿠라은행과 경영통합되어 미쓰이스미토모은행으로 재탄생하자 거래를 튼다. 다만 이때도 거래관계는 구 사쿠라은행 쪽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카와사키제철 역시 일본제관과 합병하여 JFE스틸로 재탄생하면서 거래가 재개되었는데, 역시나 구 일본제관 쪽 인물을 통해서만 거래한다고 한다. 참으로 질긴 원한... 참고로 미쓰이그룹과 일본제관은 토요타가 경영난을 겪었을 때 채무유예, 대금지불유예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한다. 이 사례는 토요타 본사 인근에 있는 나고야 사람들의 특성의 예로 거론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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